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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정도(正道)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40002 2020. 7. 2. 01:29

영화가 땡기던 밤 뇌리에 스친 영화가 있었다.

바로 올해 초 친구가 극찬했던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코로나를 핑계로(?) 못 보게된 영화를 드디어 핸드폰 화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별 기대는 없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클 터이니.

와, 근데 이거 물건이다.

신인 감독이라고하는데.. 이거 이거 신인 감독의 노련함이 아니다.

 

나는 본 영화를 보며 다른 이들이 칭찬한 (흥미롭게 여긴)

비선형구조, 여러 챕터 구성, 플롯이 겹치는 전개 등에는 구미가 댕기지 않았다.

독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이러한 구조적인 면보다는 영화의 핵심을 봐야한다 생각했다.

 

본 영화를 보면서 나는 교과서적인 느낌의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국어시간에 배우는 그런거 있지 않은가, "소재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간 갈등이 일어나는데..."

본 영화는 캐릭터, 연출, 스토리 진행.. 모든게 철저히 의도하에 설계된 도면과도 같았다.

 

영화가 뻔했다는 게 아니다. 

극의 모든 요소가 잘 짜여져 있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과하지도 않게, 또 어렵지 않게 아주 정석적으로 풀어내었다.

 

특히 카메라의 사용방식에서 이러한 정도(正道)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두 캐릭터의 대조가 필요한 경우 두 캐릭터의 얼굴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식으로 편집을 한다든지.

이게 참 뻔하면서도 어찌보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주 잘 만들어진 음식도 담백하기만 하면 분명 심심할 것이다.

그랬기에 감독은 앞서 말한 비선형구조, 여러 챕터 구성의 진행, 여러 플롯의 오버랩과 같은

간들어진 조미료를 치므로서 영화의 맛을 살려낸다.

 

조미료 또한 과하지 않았고 적정선을 지키며 훌륭한 완급조절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영화 사이사이 나오는 아주 노골적인 유머코드, 적절한 음악 사용,

수미상관법적인 극의 구성, 그리고 은은한 사회풍자까지. 이를 모두 담아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대단한 것이다.

 

모든 극이 그러하듯 잘 짜여진 대본과 약간의 센스가 재미있는 극의 핵심임을 다시끔 보여준 작품이다.

하필 올해 개봉을 하게 되어 빛을 못 본 비운의 작품이라 생각되는데

감독의 다음 작품이 정말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