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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죽(고 싶지는 않)은 원생의 후회

40002 2023. 9. 17. 07:18

'이래저래해서 쉬게 되었다.'라는 초입을 생각했지만 너무 삶의 무게에 찌든 직장인 같아 단도직입적으로 쓰기로 했다.

 

'죽은 대학원생이 되기는 싫기에 쉬게 되었다.'

이번 주 월요일날 나는 응급실에 갔다. '입원했다.'도 맞는 표현이지만 응급실로 직접 차를 끌고 갔기에 이도 맞는 표현일 것이다. 매주 월요일 나는 미팅과 마주한다. 원생으로 살며 매주 미팅이 있는거야 흔하디도 흔한 일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목줄마냥 나를 죄여오고 있었다. 원인을 논하고 싶지도 않고 논제가 되어도 큰 의미가 없으니 이는 스킵하고 결과론적으로 바라보자. 누구들 미팅이 좋겠냐만은 최근의 나에게는 이 시간과 공간은 참 힘들고 공포스럽기만 했다. 부족한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자책감으로 돌아왔고 질책을 받을 때의 순간들이 내게는 무섭기만 했다. 분명 건강한 피드백인 것임은 잘 알고 있으나 굴레가 언제부터 돌고 있었는지 건겅해야 할 피드백이 어째 양성 피드백이 되어 나를 조여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주 월요일이 기폭장치가 되어 불순한 생각들로 가득해졌다. 그냥 여기서 스위치를 끄면 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반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생각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음도 있기에 두 진영간의 열띤 토론이 이어질 뿐이었다. 이 토론을 결국에 중재하고 판단해야 할 판사인 내 입장에서는 두 의견 모두 너무나도 설득력이 있었고 그게 나를 더 힘들게만 했다. 결국 다른 이들의 자문을 구했고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 결론으로 다다르게 해준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할 뿐이고 심지어 이것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온 지인도 있어 나의 모자란 인복이 오늘 하루만큼은 빛을 바라는 게 아닌가 했다.

 

그렇게 응급실을 찾았다. 차를 끌고 스스로 응급실은 찾아가는 것도 참 웃겼고 신체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입원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솔직히 부끄러웠다.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태반인데 말이다. 정신의가 지금은 없다는 이유로 첫 번째 병원에서 퇴자를 맞고나니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했다. '아, 내가 차 끌고 다니면서까지 이렇게 응급실을 찾아야하나?'라는 의아함도 함께 가지며 두번째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두 번째 병원에서는 나를 오케이 해주었고 간단한 질의로 입원 절차는 시작됐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불안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힘드신가요?" "음... (이래저래해서)...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선택을 할 것 같아서 왔어요.." 이 말하고 나니 바로 눈빛이 달라지시는 선생님들. 그렇게 응급실에 들어오고나니 바로 피 뽑고, 혈압재고, X-ray를 찍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게 프로토콜이라 하니 지침에 따랐다. 그리고 링겔 맞으면서 응급실 천장을 쳐다보니 그제야 뭔가 실감이 갔다. '아, 나 힘들어서 여기까지 왔구나..' 나는 우울증 치료를 받기 위해서 2018년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아 왔다. '정신과 상담'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그냥 담당 선생님이랑 주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울증이 심해지면 '응급실에 가는 경우도 있다.'라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웬걸 그게 바로 나다. 참 웃기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결국에 결국에 무너져 내려 여기까지 내가 왔네..'라며 스스로를 돌아봤던 것 같다. 응급실은 참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아마 나는 가장 보기에는 정상이었을 것이다. 이 점도 내게는 죄책감이었다. '아, 나 정상인데 왜 여기에 있는거지..?' 그렇지만 안으로는 이미 썩어 문들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니 나도 응급하기에는 충분히 응급하다고 생각도 들었다.

 

누워서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어떻게 왔느냐라는 질문에 항상 해오던 식의 인트로를 했다. 의사 선생님을 4번이나 바꿨었기에 나의 증상을 구술하는 것은 어느정도 도가 텄다. '저는 고민이 많은 성격인데요.. 인간관계에서는 이러 이러한 면이... 연구실 삶에서는 이러 이러한 점이...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이러 이러한 점이 걱정이 많습니다...' 자주 이야기하는 레파토리지만 막상 말하다보니 또 울컥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미건조하게 넘어가고 싶지만 역시 감성충만 F인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힘든 모습 남들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은데 애써 강한 척 하려다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하겠지만 결국 논점은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응급실을 찾기 전 나는 이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가 죽지 않는 이유는 남들에게 내 죽음이 민폐가 되기 때문 외에는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결론이었다. 내가 나로 살아야하는데 이미 나는 없고 남들에게 나를 맞추고 있고 이런 스스로를 복돋아 주지 못할 망정 헐뜯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 시간정도 하고 어느정도 의사 선생님과 친해지니 선생님께서 이런 우스갯 소리를 하셨다. "결국 죽은 대학원생이 될거냐, 죽지 않은 대학원생이 아닌 사람이 될거냐의 문제 아닐까요?" 더 나아가서 "이미 본인도 열심히 노력했고 생각도 깊이 했던 것 같은데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라 말씀하시며 약 처방과 하루 자고 가라는 말씀을 남기고 퇴장하셨다. 얼마 안되어 서울에서 온 지인과 저녁을 먹었고 이 뒤에는 긴장이 풀려서였는지 약 기운 때문인지 바로 침상에 뻗어버렸다. 깨고나니 여전히 나는 응급실 병상이었고 마음은 호전되었어도 상황은 그대로인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병원에 나오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걱정을 안고 차를 뽈뽈 끌며 방으로 향했다.

 

이렇게 저렇게 되어서, 아니  '죽은 대학원생'은 되기 싫기에 결국 랩을 쉬게 되었다. 그만두는 건 아니고 우선 병가로 당분간 지낼 예정이다. 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달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쉬었지만 이번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는 참 불안하고 모든게 무너질 것 같고 의기 소침했다면 지금은 이것은 물론이거니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그런 불확실한 미래까지도 보여진다. 쉰다면 쉬는 거지만 이제는 결정을 다듬어갈 시간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회복은 내 생각에는 그렇게 극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경험상 사람이 어느정도 괜찮아지지만 또 몇 달 자책감을 갉아먹는 삶에 파묻히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 죽고 싶다 생각 뿐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 참 많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 많고, 가보고 싶은 곳들도 많고, 보고 느끼고 즐기고 싶은 것들이 한 가득인 세상 속에서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해야하는가가 참 미안할 뿐이다, 내게. '행복하면 좋겠다.','너를 챙기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최근에 많이 듣는다. 참 이게 어려운 것 같다. 아직까지도 내가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에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우기도 어렵다. 한 때는 너무 힘들어도 내 모든 것을 다 받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막상 내가 다 무너뜨린 것 같아 힘들기만 하다. 쉬면서 어느 하나 정리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어떤 선택을 하는게 내게 가장... 행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다. 

 

ps. 이 글을 읽고 있을 지인 분들에께는 1차적으로는 정말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돌아 돌아왔지만 그래도 제가 이런 글이라도 쓰고 있는 것은 다 여러분들 덕분이라는 것을. (이건 우스갯소립니다 -->) 여러분들 아니였다면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과 마주해야 했을 수도 있거든요. 2차적으로는 결국 이기적인 제 자신이라 죄송하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결국 글의 논점을 떠나서 감정적인 면들이 너무 이 글에 즐비한 것 같아요. 그런 제 모습을 강요한 점에 대해 죄송합니다. 여러분께 누가 되지 않도록 좀 더 잘 다듬어 지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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