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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휘란 무엇인가 - KBS 교향악단 & 파비오 루이지 본문

Classic/2018

좋은 지휘란 무엇인가 - KBS 교향악단 & 파비오 루이지

40002 2018. 10. 18. 22:43

연주단체 : KBS 교향악단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

 

주요 연주자 임동혁

 

공연 내용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브루크너 교향곡 9


날짜 및 장소 : 10월 14일, 통영 국제 음악당

 


중간고사도 안 보겠다 여행이나 가보자는 심정으로 여행을 갔다예전부터 울릉도를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고 배멀미도 싫으니 패스서울 근처는 자주 갔으니 신선하지도 않고그렇게 뒤적뒤적하다가 고른 곳이 통영이었다바다를 보고 싶기도 했고 운좋게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KBS 교향악단의 공연이 있다는데 가야하지 않겠는가음악당의 스테레오가 궁금하기도 했고 파비오 루이지의 브루크너 9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클잘알 형의 추천으로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에 대한 단상은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구나.' 였다통영 중앙시장에 꿀빵 가게 수만 세어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세어보지는 않았다그냥 많다.) 난 돌아다니는 것은 좋아하는데 막상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한다그래서인지 관광지라 여기는 장소들로의 관광을 싫어한다평상시에도 부땡기는 곳이 사람의 숲인데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간 곳까지 그 숲이고 싶지는 않아서이다그래서인지 시장보다는 사람 없는 바닷가에 가서 물이 오고 가는 것만 지켜봤다물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난 물이 좋다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나는 KBS 교향악단을 별로 안 좋아한다요엘 레비가 폭삭 망해가던 KBS 교향악단의 기강을 다시 올렸다고 하지만 난 요엘 레비의 지휘 스타일이 싫다요엘 레비가 교향악단을 전부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임인만큼 그의 영향력이 큰 것도 사실이다뭐랄까 지휘가 무난하다고 해야하나무색무취의 지휘어느 곡에 대입해도 적절히 먹힐 것 같은 지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난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KBS 교향악단을 여태까지 봐왔고 괜찮은 공연도 더러 있었지만 막상 만족되었던 공연은 딱히 없었다.

 

곡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통영 국제음악당의 음향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실황을 자주 접하게 되니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도 중요하지만 그 홀의 음향이 얼마나 좋은가도 따지게 되었다이런 의미에서 이번 국제음악당 레이드(?)는 내게 중요한 순간이었다과연 이 홀은 내 귀에 얼마나 소리를 잘 꽂아주는가결론은 '좋네였다다른 음향 좋은 공연장들처럼 소리가 내 귀까지 잘 꽂혀 들어왔다최소한 음향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공연을 보지는 않았다. (공연장 자체도 참 예뻤다.)

 

목재라 그런지 홀이 참 예쁘다


임동혁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부터 이야기해보자파워가 넘치는 연주였다초반에는 본인의 파워에 못 이겨 연주가 어그러질 뻔하다가 나중 되어서는 잘 길들여 연주를 잘 이어 나갔다카덴차에서 특히 이 점이 부각됐는데 3악장에 있는 카덴차에서 피크를 찍었던 것 같다임동혁이 어떤 연주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일 퍼포먼스를 봤을 때에는 꽤나 연주에 심취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모든 협연자가 그러하지만 이번 공연이 특히 그래보였다앵콜도 잔뜩 FEEL에 취해 치더라.

 

자 그러면 메인 디쉬인 브루크너 9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제목에서 밝혔듯이 이번 공연은 좋은 지휘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지휘자는 결국 음악을 만들어가고 단체를 리딩하는 지도자로서 단원들에게 정확한 인스트럭션을 줘야한다소리가 작으면 더 크게 내도록 지휘해야하고 템포가 애매하다 싶으면 조절 해야한다이런 인스트럭션으로 오케스트라를 잘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지휘자도 있는 반면, 열심히 지휘는 하는데 막상 곡으로는 표현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후자를 볼 때마다 참 답답하다. 실황이란 것이 듣는 맛도 있지만 결국에 보는 맛도 있기 때문에 아무리 소리가 깔쌈하다고 해도 보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면 그 전율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파비오 루이지는 앞서 이야기한 '좋은 지휘'를 하는 '좋은 지휘자'였다. 딱 필요한만큼의 지휘를 했다. 템포 잡아주고 부각되어야 할 파트는 더 강조해주고. 격정적일 때는 텐션을 올려주고 필요할 때는 잦아들게 하고. 이런 직관적인 지휘를 간들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참 능력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덕분에 교향악단의 연주 능력 자체도 꽤나 물이 올라 브루크너 9번도 즐겁게 잘 들었다. 개인 솔로의 미스나 악기끼리 주고 받는 그런 정교한 부분에서는 흔들림이 있긴 했지만 루이지 옹의 (속된 표현 섞어서) 'ㅅㅂㄴ들아, 이 겜 내가 캐리한다.' 가 느껴졌다. 교향악단이 그리 못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파비오 루이지의 지휘가 원채 좋았기에 이리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대전으로 오는 막차를 타야하는 입장이라서 공연 끝나고 나서 우레 같은 박수를 못 친게 아쉽다. 정말 오랜만에 집중하고 공연에 심취 할 수 있었다. 홀도 좋았고 레파토리도 좋았고 공연 자체도 좋았으니. (거기에 티켓 값까지 쌌다. ㄱㅇㄷ) 자주는 아니여도 이런 기회가 종종 있으면 좋겠다. 공연을 본다는 것은 뭐랄까.. 2시간동안 내 집중을 한 곳에 오로지 투자할 수 있다는 그런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한데 공연을 볼 때면 구름 개이듯 깨끗해지는 참 좋다. (좋은 공연이란 가정이 깔리긴 한다) 담번 KBS 교향악단 공연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