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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 퍼스트 맨 본문

Movie/2018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 퍼스트 맨

40002 2018. 10. 22. 01:21

영화 명 : 퍼스트 맨 (First Man), 2018

감독 : 데미안 셔젤

주요 출연진 :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미래 경찰, 재즈바 사장도 싫었는지 이제는 우주까지 간다


'와 이게 첫 작품이라고?' 광기 어린 주인공의 드럼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유독 늦었던 <위플레쉬> 개봉 일정에 나는 스크린이 아닌 노트북 화면으로 <위플레쉬>를 처음 보았다. 단순한 음악영화일 수도 있지만 작품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성취를 향한 의지 그리고 염원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씨퀀스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미친 듯한 질주는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영화 <라라랜드>는 또 어떠한가. 라라랜드란 꿈을 향한 남녀의 이야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뭐랄까 웃으면서 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던 작품이다. 이로 인해 나중에는 스크린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내 안에 있던 순수한 감정선을 건드려 터뜨린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앞서 이야기한 두 작품의 감독, 데이만 셔젤이 영화 <퍼스트맨>으로 돌아왔다. 어째 음악 관련한 영화를 또 제작할 것 같았는데 공돌이스러운 이야기로 찾아왔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닐 암스트롱이 달로 가는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인데 어디에 포커스를 맞출 것이고 또 그간 보여준 장점들을 감독은 잘 보여줄 것인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 (정확히는 책을 바탕으로 하니) 본인의 상상력이나 연출에도 제약이 있을텐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인류가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 <퍼스트맨>은 오묘한 작품이다. 여러 감정선들이 어우러져 나아갔던 작품이었다. 본 영화는 닐 암스트롱 (라이언 고슬링)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주된 흐름은 닐 암스트롱의 고뇌와 갈등이댜. 다르게 말하자면 영화는 인류가 달에 가기까지의 서사가 아닌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맞춘다. 철저히 닐 암스트롱의 관점으로 그려진 영화였고 그러하였기에 오히려 이 영화가 신선히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를 만드는 경우에는 보통 그 '사건'이 중심이 되어 인물들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러이러한 장군들과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에 의해서 우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가 일반적인 서사이다. 본 영화는 그러하지 않다. 달에 가기 위한 여정을 닐 암스트롱 입장에서 그리기 위해 외적인 요소들을 가급적이면 다 쳐냈다. 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한 그 당시 미국 사회의 여론에 대해서 영화는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언급은 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니 닐 암스트롱의 심리적 갈등을 위함이지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영화는 닐 암스트롱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지 인류의 대서사가 아니다. 


그렇기에 본 영화는 우주라는 스케일 치고는 장엄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다. <인터스텔라>처럼 무거운 사명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레비티>처럼 우주라는 공간에 압도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뿐이다.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아는 닐 암스트롱이지만 결국에 그도 한낱 인간에 불과함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너나 나나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힘들면 울고 아프면 괴롭고 죽음이 두렵다. 영화는 이런 닐 암스트롱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담히 잘 그려냈다.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지금의 발자국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기 전에 결국에 한 인간의 발자국이었던 것이다. 



감독의 장기도 적당히 살린 작품.

데미안 감독 특유의 음악을 통한 스토리텔링도 빛을 발하였다. 위플레쉬 때부터 같이 해온 저스틴 허위츠 음악 감독의 솜씨는 우주에서도 그 진가가 들어났다. 난 여리여리한 하프 선율이 우주를 배경으로 이렇게 잘 맞을 지 몰랐다. 특히 첫 랑데뷰 장면의 왈츠풍의 음악을 들으며 '비행선의 비행 장면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무거울 때는 특유의 생동감 있는 비트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잘 표현하였다. 더 좋은 사운드로 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했다.


아쉬움도 있긴 했다. 닐 암스트롱의 고뇌가 담긴 작품인만큼 조금은 더 무게감을 잡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담담하게 나아갔는 이것보다는 조오금 더 누르면서 가도 되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더불어 앞서 말한 다양한 분위기들이 잘 섞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분위기들을 여운을 주면서 길게 끌고 나갔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나만 트집을 더 잡자면 영화 내에서 흐르던 메인 선율이 어째... 라라랜드의 테마랑 비슷하게 들렸다. 처음부터 의식이 되서 그런지 영화 라라랜드랑 겹쳐 보이기도 했다. 배우도 라이언 고슬링인지라..)


라이언 고슬링의 묵묵한 연기도 참 좋았다. 배우 특유의 반정도 얼빠진 느낌이 영화의 톤이랑도 잘 어우러졌다. 닐 암스트롱의 아내를 연기한 클레어 포이의 존재감도 확실해서 좋았다.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였지만 그의 옆에 있는 아내의 감정 또한 확 와닿을 수 있어서 암스트롱의 입장이 더 생생히 전달됐다.



전율과 격정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한 인간이 어떻게 First Man이 되는지 마치 산을 오르듯이 표현해낸 작품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Daum 영화